평생, 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짧은 세월같지만 어쨌거나 평생을 4월 15일이 생일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는데 비로소 작년 겨울에야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큰외삼촌을 불러 손자손녀들의 출생시가 적힌 쪽지를 건네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절대 고개 숙이지 않고 빳빳하게 서 있던 머리카락만큼이나 꼬장꼬장하시던 외할아버지는 잔정도 없으셨는데, 결국 다리가 부러지신 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점점 얇아지는 종아리에 엉덩이에는 욕창을 달고 돌아가셨다. 그 분이 돌아가신지 십 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분께 최초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졸지에 내 생일은 4월 16일이 되고 말았다.
하루 차이이긴 하지만 이 변화가 새삼스러워서 무언가 다른 인생을 살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여태까지 알던 나와 조금 다른 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아침에 엄마는 새우와 쇠고기를 한 번에 넣은 미역국을 끓여 주셨지만 평소와 다름 없이 출근 시간에 맞추느라 한 숟가락이나 떠먹고 말았어도 사랑한다고 말해주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납치해서 깜짝 파티도 해주었고 일한다고 앉아 깜깜한 컴퓨터 대기화면을 마우스로 흔들어 제꼈더니 예쁜 생일 케이크를 바탕화면에 담아 깜짝 놀래킨 나의 멋진 사수, 도 있었다. 주변 사람을 아껴주려는 고마운 마음들 덕분에 내 하루가 그나마 평온하게 흘러갔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이토록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 마음은 전쟁이 지나간 쑥대밭처럼, 싸우고도 모자라 즐비하게 편을 나눠 늘어져 있는 잔해들처럼 계속해서 끔찍한 장면들을 연출 중이다. 비록 어쩔 수는 없지만, 나는 나쁘다.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이 나쁘다.
변화의 경계는 매우 애매모호하다. 저녁에는 2년 동안이나 써온 핸드폰이 이제 더이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핸드폰을 바꾸러 대리점에 들렀다. 이제 답장 버튼을 누르고 답장을 쓸 정도의 레디고가 되려면 10초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앉아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주 싸고 유행도 지났고 이제는 빨간색 옷마저 군데군데 벗겨진 못난 싸이언인데 거기에 얽힌 소중한 추억들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서 나는 그 못난 기계를 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내일 개통해 달라고 말했다. 새 기계는 반짝거리고 예쁘지만 콧물 눈물 볼에 기름을 묻혀가며 써왔던 핸드폰도 무척이나 소중했다. 괜히 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다가 서점에 가서 책을 두 권 사서 돌아왔다. 핸드폰이 이러할진대, 다른 것들은 오죽하랴. 기계나 물건도 사람만큼이나 때를 타고 정을 타는 것 같다. 오래 묵고 익숙해지면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속속 깊이 알게 될수록 안스럽고 안타깝고 고맙기까지 하고 그렇다. 역시나 빈티지나 앤티크 딱지를 뗄 수가 없다. 나이 먹어 곧 무너질 것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도 이 집의 유구한 역사니 주춧돌의 부식 연도니를 따지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무척 잘 버리면서도 한편으로 끝끝내 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모순 덩어리가, 바로 나다.
생일은 생일대로 다른 날들에 파묻혀 지나치게 될 것이다. 생일은 수많은 날들 중의 하나고, 기계도 책도, 무수히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이고,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고, 당신은, 당신도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온기가 더해지면서 누군가에게 잊혀질 수 없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이 블로그도 나에게는 참 소중하고 고마운 공간이었다. 이곳에 포스팅을 했던 날들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