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길다 2




사무실에서는 일하던 사람들이 J언니가 이상하다며 뛰쳐 나와 나를 찾았다. 뒤에서는 택시 기사님이 택시비 2만원을 달라며 나를 찾았다. "잠깐, 한 번에 한 사람씩요!"


일단 J언니에게 가서 택시타고 왔으니 택시비를 내야죠, 2만원 주세요, 라고 당당한 포스로 이야기했더니 눈을 깜박이면서 그녀는 대신 내줘, 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 손에 들고 있던 지갑을 가리키니까 주섬주섬 2만원을 꺼내길래 낚아채서 일단 기사님을 보냈다. 사람들은 J씨를 데려가요,라며 복도 저쪽으로 혼자 천천히 딴 생각에 빠져 걸어가고 있는 J언니를 붙잡아왔다. 눈빛이 이미 초점을 잃었다. 무서웠다. 내가 알던 J가 아니었다. 집에 가요, 언니. 라고 하자 그녀는...오늘밤 나랑 여기에 있어주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젠장, 난 당신의 알렉스씨가 아니라고! 아무래도 큰일같았다. 집에 연락을 취해서 멀리 계신 J언니의 어머님께서 오시기로 했다. 둘이서 J를 붙잡아 차에 태우고 달렸다. J언니는 뒷좌석에 앉아서 홀로 큰소리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주여, 저는 시험에 들었나이다. 저를 여기서 꺼내주옵시고...나는 엑셀을 힘껏 밟았다.


J는 집에 도착했을 때쯤 이미 나를 몰라보는 것 같았다. 자꾸 J언니는 어디론가 천천히 걸어서 도망을 가려고 했다.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가족이 올 때까지 함께 있으려고 혼자 사는 그 집의 문을 열었다. 그녀와 나는 방바닥에 앉았다. 나는 일주일 동안에 천천히 변했고, 하루만에 급격하게 변한 J언니가 무섭고 두렵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말해봐요, 아무 말이나 해봐요, 라고 재촉했다. 그녀는 제가 시험에 들었어요, 라더니 내게 무릎을 꿇었다. 저는 오늘밤 죽을 거에요, 라고는 엎드려 절을 했다. 저는 사랑과 평화와 화합을 선택했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간에서 순교했어요. 순교는 숭고한 것이에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이. 승. 룡. 이에요. 아시겠어요? 그 사람은 저를 대신해서 죽었어요. 저는 주XX목사의 후손이에요. 지금 사단이 세계하고 있어요. 촛불시위는 점차 사그라들어야 해요. 광주에서부터 조용해져야 해요. 대답하세요. 지금 당신만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대답했잖아요. 그녀는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 돌아다녔다. 소변도 문을 활짝 열고 봤다. 미처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점심도 저녁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아침은 먹지 않는 습관이 있으니 하루 종일 굶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가방에 있던 빵을 주었다. 무척 맛있게 먹었다. 빵을 먹은 그녀는 자리에 다시 앉더니 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 방에는 벽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고, 더워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뒤 나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이미 8시가 넘어 창밖에는 어둠이 깔리고, 베란다 너머에는  태양빛이 미처 사그라지지 않은 남보라색 모양의 하늘에 교회 십자가에 불이 켜지고, 24시간 찜질방 간판에 불이 켜졌다. J는 그 너머의 하늘을 보며 혼자 낄낄낄 웃어댔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고 공허해서 눈물이 났다. 그녀는 아무도 없는 이 방에서 밤이 되면 홀로 저 창밖을 이런 모습으로 바라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왜 그렇게 웃어요. 같이 웃어요, 라고 말을 걸자, J는, 지금 우리 집에 좋은 소식이 있다고 누가 귓가에 대고 알려주고 있어요. 라고 대답하며 계속 낄낄 웃었다.



견딜 수가 없어서 샤워를 시키자, 옷을 벗으면서 그녀는 누군가를 향해서 얘들아, 나 샤워하니까 보면 안돼, 라고 친절하게 말하고 오랫동안 씻고, 나와서 잠이 들었다. 잠들고 한 시간 후쯤 그녀의 어머님이 오셨고, 병원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셨다. 어머님은 놀라지 않으셨고, 무슨 일이냐, 왜 이러느냐, 묻지 않으셨다. 아마 어느 정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리고, 지친 나도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내가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소문은 미리 당도해 있었다. 사람들은 소근거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입은 다물었지만, 그래서 그렇게 이상했구나, 라며 내 의견을 물었다. 예전에 있었던 사소한 상처나 일거리 하나까지도 다 도마위에 올랐다. 그래서 그렇게 이상했구나. 다들 끄덕거렸다. 그래서 그런 거였다면 내가 이해해야지, 뭐. 참 불쌍하게 됐네. 라고 했다. 난 이 상황을 보면 J가 무어라고 할까, 아마 어제 좋은 소식이 오고 있는 것처럼 낄낄낄 웃었겠지, 라고 생각했다. 오래도록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원래 말수가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던 J언니의 집은 휑뎅그레했다. 정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는 빈집같았다. 퇴근 후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에서 그녀는 무얼 했을까. 외로웠을까. 마음이 아프지 않은 누군가들에게 마음의 병을 들킨 J언니는 하루만에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녀의 이야기는 종국에 하루치도 못되었다. 시간은 바쁘게 돌아갔다. 남의 화제거리보다는 자기 일이 바빴다. 세상은 참 만만치 않은 것 같다. J의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덥고, 조금 흐린 날씨다.






by February | 2008/07/18 18:58 | 전파상 수신지역 | 트랙백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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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담요 at 2008/07/18 19:37
슬픈 이야기라는데, 호러물로 보이는 건 왜일까요.
내일이 초복이라서 그런 걸까요. 흠흠흠.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18 19:46
담요님아, 그럼 호러물이라고 해요.(무책임)
Commented by 미도리 at 2008/07/18 19:46
나 아직 퇴근전인데 2월님연재소설 읽고있어요;;;;히히힣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47
Midori님, 저거 소설 아니에요. 히이익
Commented by daewonyoon at 2008/07/18 21:54
이런 건 쓰지 않았어야 해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47
daewonwyoon님 ^^;;;;;; 무섭잖아요, 왜 그러세요
Commented by 림삼 at 2008/07/18 23:02
무엇이 j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슬프면서도 무섭네요...이 글을 읽으니 한 숨이 푹푹 나오네요... j는 외로웠던 걸까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48
림삼 님, 음,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요.
Commented at 2008/07/18 23: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48
응, 난 인조인간.
Commented by 팅이 at 2008/07/18 23:49
이야기가 슬퍼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48
팅이 님, 에, 현대사회의 파편화와 개인의 상실[....]-_-;;
Commented at 2008/07/19 10: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50
이 글에 덧글이 안 달아져요.ㅠ
Commented at 2008/07/19 10: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7/20 19: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51
실례라뇨.

이거랑 그거랑은 별개니깐, 뭐. 재밌었어요.
그런데 오픈엔디드 콩트는 진짜 재밌겠는데? (군침돈다)
Commented at 2008/07/21 00: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53
응, 그렇구나. (끄덕)


나, 거기 알아요.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친하던 선배가 거기 근무했었어요. 물론 전산쪽은 아니고 업무쪽이었지만요. 그래서 대충 분위기를 많이 들었어요.

꽤 보수적이라는 거 맞는 거 같아요. 일반 그런쪽 계통보다 훨씬. 그리고 정체되면 보수적으로 흐르는 것도 맞고. 고인 물은 보수적이 되는 거야. ㅎㅎ
Commented by eversoul at 2008/07/21 03:33
난 왜 작년겨울 서울역에서 만난 여노숙자가 생각나지.... 별 도움 안될지도 모르는 동정의식에 식당에 데려갔네요. 말한마디 없이 설렁탕을 허겁지겁 게눈감추듯 비우고는 고맙다며 머리를 몇번이고 조아리는데 눈물이 났었죠..

그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사람 뱃속의 새생명 때문에.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54
eversoul님, 서울역에 노숙자가 얼만데! 부자다,! ㅎㅎ
Commented by 제절초 at 2008/07/21 12:07
오랜만에 2월님 글을 읽었는데 왜 이리 쓴건지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21 23:54
제절초 님, ^^;;;;; 뭐 맘에 안드시는 거라도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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