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굴루스에서 만난 애인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이굴루스에서 블로깅을 하는 한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이굴루스에서 만난 애인을 두고 있었는데, 그는 애인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애인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했다. 하지만 완벽한 사랑은 없듯이 그에게도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애인이 '바람 피는 여자'라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저 밑변에 어렸을 적 바람 피운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거나 혹여 이드나 에고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을지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것은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만 있는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바이고, 하여튼지 여하튼지간에 그는 애인을 사랑하는 강도만큼 애인이 바람피는 여자라고 굳건하게 믿었다. 그렇다고 해서 의처증, 이라는 단어로 정의내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바람 피는 여자'라는 슬로건은 종교적인 신념만큼이나 투철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그녀를 질투한다거나 화를 낸다거나 더 나아가서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술을 먹고 와서 빈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으며, 오히려 인간이란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없는 존재, 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인간은 바람을 피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믿어왔으며, 그 신념을 단지 그의 애인을 대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 에 대해서 내가 만나봤던 그의 애인인 그녀의 반응은 늘상 한결같이 피식, 웃음을 짓는 것으로 시작해서 피식, 웃음을 짓는 것으로 끝났다. 마치 자유연애주의자처럼 보이는 그녀는 기본적인 성격이 당돌한 여자였고, 꽤 많은 일들에 무심한 편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런 것 따위, 라고 코웃음이라는 폴더에 '바람 피는 여자'라는 항목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여태껏 14명을 만나본 알서방의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10년 정도의 사이에 대략 7번 이상의 연애를 거쳤고, 그런 식으로, 다시 말하면, 자신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연애했던 대부분의 상대들은 넌 바람을 핀다, 라고 의심해왔던 많은 일들 덕분에 오히려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라는 어설픈 일반론의 오류에 시달렸다.


어쨌거나 그들은 사랑했다. 남자는 매일같이 여자의 블로그에 57번씩 들려서 여자보다 더 열심히 이굴루스이 덧글을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리퍼러를 확인하고 쫓아가서 그녀의 남겨진 흔적을 보고는 역시, 이 여자는 '바람 피는 여자'였음을 확인하고 좌절하곤 했다. 수상한 덧글이 달린 다음 날이면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 키스를 했다. 그들은 그것을 수상한 덧글용 키스, 라고 불렀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그들은 사랑했다. 사실 여부를 제쳐두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를 위해서 나는 이 이야기를 심심하게 끝낼 것인지 아니면 판타스틱하게 끝낼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역시 사실을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어느날 불현듯 여자는 떠났다. 사랑했으나 떠나는 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는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고, 둘다 서른을 훌쩍 넘고도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가 결혼하는 일은, 남자와, 여자와, '바람 피는 여자' 셋이 결합하는 일이 될 거야, 포기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되지 못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식으면, 사랑하는 이유가 되었던 아름다운 이유들이 헤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자는 떠났다. 


'바람 피는 여자'를 믿던 남자는 남았다. 남자는 새 글이 올라오지 않는 여자의 블로그를 여전히 하루에 57번 방문했고 그녀가 바람 나서 떠났다, 라고 믿었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by February | 2008/07/04 00:59 | 오프닝 멘트 | 트랙백 | 덧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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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7/04 01:0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01:10
이건 오프닝멘트니까요, ㅎㅎ
Commented by 둥가 at 2008/07/04 01:07
먼가... 움.... 예... 그래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01:12
둥가 님, 오늘은 해피엔드가 잘 되지 않았어요. ^^;;;;
Commented by 꿈의대화 at 2008/07/04 01:12
오프닝 멘트 군요. 오늘도 멋진 글 감사합니다.

책 한권 쓰셔요. 저희 작은 아부지께서 작은 출판기획사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음...음..."천 권 정도는 팔 수 있을테니, 일단 절 믿고 내 주시라니깐요"라고
작은 아부지께 제가 사기를 치도록 하지요. 그런 다음 수익금은 8:2 오케이? 물론
제가 2입니다만;;

헉. 꿈이었군하.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14
대화 님, 작은 아부지께 친 사기가 정말 사기가 될까봐 두렵습니다만.
Commented by 사은 at 2008/07/04 01:22
이제 금요일이니깐요! 조금만 더.
믿음은 아름다운 것이라고들 하지만 남자의 믿음은 조금 슬프네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14
사은님, 이번 주엔 잠이 모자라 죽을 지경이에요, 걸어가다 졸아요,
Commented by 림삼 at 2008/07/04 03:55
오프닝 멘트군요^^. 오호라~. 흠, 헤어진 연인의 업뎃 안된 블로그를 57번이나 들락날락하는 남자의 심리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15
림삼 님, 그 여자는 아마 다른 블로그를 만들었겠죠.
Commented by 유리한 at 2008/07/04 04:14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런 글 좋아요.
근데 그 남자도 조금은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어쨋든 뭔가 아련합니다 그려 ㅎㅎ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16
유리한 님, 기괴하고 타락한 끝을 생각했었는데, 쓰고 있자니 잠이 많이 오더라구요.
Commented by eversoul at 2008/07/04 07:01
오타 살포시 확인-
넷상을 통해 처음 정이 동한 연인은 대부분의 경우 그 끝이 좋지 않았지만 우연찮게도 제 주변엔 두커플이나 결혼을 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어요.
역시 만남은 How가 아니라 who 라는거.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17
eversoul 님, 제가 모모님 블로그에서 봤는데 오타를 찾으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사이트가 있었어요. 어떠세요, 후후
Commented at 2008/07/04 08: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18
이굴루스말고 다른 걸로 할 걸 그랬나요, 이골라스나 나골나스,라든가.
결론, 맘에 드는데요. ㅎㅎ
Commented by アネゴ at 2008/07/04 10:15
안녕하세요. 잘 읽고 갑니다. 수상한 덧글용 키스 좋군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19
일본어를 배운지 오래되어서 무어라고 읽어야 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아무리 수상한 덧글용이라도 키스는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까요.
Commented by daewonyoon at 2008/07/04 11:26
이런 글 때문에 하루에 57번씩 찾아오게 된다니까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19
daewonyoon 님 , 방긋, (설마요)
Commented by 백월 at 2008/07/04 17:47
상처입기 방지용의 섣부른 포기였군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뭐 그런걸 '티'내는 거는 '나'를 보고 있지도 신뢰하지도 않는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 쉽게 지쳐버리더군요. 세명의 결혼이 될거야 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20
백월 님, 블로그에 글을 쓰면 재미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하나의 이야기에 각각 관점을 가지고 다른 생각들을 하는 걸 읽을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Commented at 2008/07/04 21: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4 23:21
뭐, 데이트라도 하신 모양?
Commented by 팅이 at 2008/07/05 07:36
이월님 책 나오면 저는 꼭 살테니까 사인해주세요!~ ㅎㅎ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5 23:09
팅이 님, 어머나, 그저 재미로 쓰는 것일 뿐인 걸요. 제가 후진 실력을 눈감아 주는 출판업자를 찾아보도록 하지요. ㅎㅎ
Commented at 2008/07/05 22: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5 23:10
설마 제가 'ㅡ'와 'ㅜ'를 구분 못할까요? (방긋)
Commented at 2008/07/06 12: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8 00:33
비공개 d님,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이굴루스에서 블로깅을 하는 한남자가 살고 있었다. " 여기? 이러면 이게 무슨 20%야, 그럴 거죠? 그럼,

"그 남자는 이굴루스에서 만난 애인을 두고 있었는데, 그는 애인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애인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했다." 여기까지.
뭐 그런 사람 한 명이상은 있겠죠. 하하.

내가 생각해봤는데, 당신을 모델로 한 포스팅을 한 번 써볼까요? 가상현실. 재밌겠다.
Commented by 리나신 at 2008/07/07 18:45
참 가슴이 좀..답답해지는 그런 상황이네요. ㅜㅜ 남자분도 안쓰럽지만, 여자분도 안쓰럽네요. 매번 그런 의심을 받는다면 말이지요.... (오프닝멘트라두 넘 리얼하다;;)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7/08 00:34
리나신 님, 심각하게 공감하고 계시는 리나신님, 큭큭. 요즘 연애중이시라 더욱 그러신 거죠? 다 알아요.
Commented by 가호아의 at 2008/08/30 10:39
하아....모든 글들이 제 마음에 쏙쏙 들어와서 유혹하듯 하늘거립니다.
덧글이 쓰고싶어서 가입했습니다.;;;;;;
이 글이 제일 처음 봤던 글이라 여기에 덧글 남깁니다.
자주 올께요<-
Commented by February at 2008/08/31 09:25
가호아의 님, 이글루스는 저에게 고마워해야겠는 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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